[영화review] 뷰티풀 마인드(2002) 영화






알려진 정도에 비해 뒤늦게 접하게 된 영화. 보다가 중간에 한 번 끊고, 기간을 두었다 다시 보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누군가가 어떻게 그렇게 영화를 끊어서 볼 수 있느냐고 타박하던 기억이 난다) 생각만큼 사람들이 말하는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음, 그렇구나, 의 느낌?(어쩌면 내 감수성이 메마른 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존 내쉬'라는 인물이 노벨상을 통해 인정받는 느낌이라서. 노벨상 수상식에서 '인간 승리'의 한 장면을 보며 감동을 얻을 수도 있지만, 왜 하필 그것이 상이라는 형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다. 오히려 그 장면보다 내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과거 젊은 내쉬가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던, 세인들의 인정을 늙은 내쉬가 받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가 이룬 학문적 업적에 대한 경의를 상징하는 만년필들이 노벨상을 받고 단상에 선 존 내쉬보다,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영화는 존 내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기반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 번 소설화되고, 그것이 다시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분명히 실제와는 변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존 내쉬의 부인은 내내 그의 곁에서 헌신적으로 머무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약 7년간의 이혼기간 이후에 다시 재결합을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앨리샤가 존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다고 말하며, 그에게 온기를 전달하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기는 하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현실에 저 정도로 헌신적이고 남편만을 위하는 부인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이 재발하고, 그들의 사랑의 결실이었던 아기조차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었다면, 글쎄, 나라면 도망쳤을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의 상황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영화는 감동적이지만,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영화가 소설과 다른 또 하나의 지점은 존 내쉬가 변화하는 모습이 덜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단일한 스토리라인을 통해 감정을 따라가며 차분히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노벨상'으로 학문적 업적을 인정 받은 학자로서의 존 내쉬가 부각되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자신만을 생각하던 이기적인 내쉬가 주변을, 가족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변화가 그려진다고 한다. 언젠가는 뷰티풀 마인드의 소설판도 한 번 읽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경제학을 막 배우기 시작하는 꼬꼬마의 입장에서, 게임이론의 기틀을 세운 두 창시자 중 하나인 존 내쉬는 존경과 경의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현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아예 변화시켰다. 그렇기에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음에도 노벨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물론 상을 받아야만 그가 이루어놓은 것들이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처럼, 새로운 것,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나는 그럴 재목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좀 더 배우면 나도 그처럼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지혜와 지식이 다른 것이듯 애초에 질문을 던지고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남의 생각의 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애초부터 다른 차원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미 후자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는 '천재'들의 삶은 어째서 항상 불후한 것일까? 머리가 뛰어난 천재들에게는 역시 하늘의 시기가 있는 것인지, 죄다 요절하거나 정신병을 앓거나 가난하거나... 앞으로 내가 어떤 분야로 나아가게 되든, 그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애초에 난 지금까지 누린 행복들이 너무 많아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덧.

영화 리뷰라고 하기에는 잡상들이 너무 많이 끼어들어버렸지만, 어찌되었든 존 내쉬라는 인물이 이런 저런 생각을 불러 일깨웠음은 확실하니까 그냥 두려고 한다.